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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경의 과학둘레] 별 헤는 밤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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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혜서 날짜20-12-28 18:21 조회1,6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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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자리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해가 일찍 저무는 겨울에는 초저녁에도 별을 볼 수 있다. 별이 항상 그곳에 있었다는 걸 알 리 없는 우리는 어둠의 장막이 내려야 비로소 그 존재를 알게 된다. 별들은 해와의 숨바꼭질을 준비하듯 밤새 동쪽에서 서쪽으로 조금씩 움직인다. 그런데 주의를 기울여보면 날이 감에 따라 새로운 별이 떠오르고 계절이 돌아오면 오랜 친구 같은 별이 다시 찾아온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중심으로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된 데는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보려 한 사람들이 있어서였다.

겨울철 대표적인 별자리는 오리온자리다. 맑은 날 이맘때 한밤중이면 사냥꾼 오리온이 남쪽 하늘에 나타난다. 그 모습이 압도적이다. 오리온자리는 옆으로 나란히 늘어선 세 개의 별에서 시작한다. 오리온의 허리 벨트에 해당되는 별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위아래 사다리꼴이 그려지는데 두 개의 밝은 별이 눈에 띈다. 왼쪽 위 오리온의 어깨에 있는 별이 베텔게우스고 오른쪽 아래 무릎에 있는 별이 리겔이다.

육안으로도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베텔게우스는 붉은 기운을 띠고 리겔은 푸른빛을 낸다. 별의 색깔이 다른 이유는 표면온도가 달라서다. 베텔게우스는 핵융합을 하는 내부의 수소 연료를 거의 다 써버려 중력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에너지가 낮은 늙은 별이고, 리겔은 연료를 활발히 태우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젊은 별이다. 별은 에너지가 높을수록 푸른빛을 띠고 낮을수록 붉은빛을 발한다. 베텔게우스의 운명은 언젠가 다가올 초신성 폭발이다. 희끄무레한 흔적도 오리온자리에는 보인다. 허리 벨트 아래쪽 배꼽 부위에 새로운 별들이 탄생하는 오리온성운이다. 태어나고 활동하고 늙어가는 별들을 품고 있는 오리온자리에는 오색찬란한 별의 일생이 담겨 있다.

그런데 별은 얼마나 멀리 있는 걸까. 절대밝기가 고려되지 않은 겉보기밝기만으로는 그것을 가늠하기 힘들다. 19세기 말 하버드대 천문대에 자원봉사자로 들어온 헨리에타 리비트(1868~1921)는 계산원으로 불리며 남반구에서 찍은 소마젤란성운의 망원경 사진 건판을 조사하는 일을 했다.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을 찾는 일이었다.

수많은 별이 담긴 양화와 음화 사진을 겹쳐 밝기가 상쇄되지 않는 별의 작은 변화를 포착하고 검증해 변광성이 확실해지면 좌표를 표시하고 기준 별들과 비교해 밝기 등급의 변화를 계산했다. 남성들의 기피 영역이었던 그런 지루한 일은 하버드대 학사 학위에 버금가는 학위를 가졌으나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던 리비트와 같은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일이었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일에 집중하고 정성을 들이는 그녀의 태도는 '종교적인 열정' 같은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수년간의 작업을 통해 그녀는 소마젤란성운에서 1천777개의 변광성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변화 주기가 일정한 16개의 맥동변광성이 밝기와 연관이 있음을 알아냈다. 그 후 25개의 맥동변광성을 조사하여 별이 밝을수록 변화 주기가 더 길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은 만일 아주 멀리 있는 두 별이 같은 주기로 반짝인다면 그들의 절대밝기가 같을 것이고 그중 하나가 더 어둡게 보인다면 그 별은 더 멀리 있는 것이어서 밝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것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엄청난 결과였다. 그러나 리비트는 우주적 파급력을 가진 그러한 발견 앞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그녀에게 허락된 영역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리비트의 변광성은 얼마 후 멀리 있는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잣대가 되어 우리가 속한 태양계가 우리은하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우리은하 또한 우주의 전부가 아니라 그 너머에는 수많은 다른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해주었다. 천문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허블은 "리비트가 우주의 크기를 결정할 수 있는 열쇠를 만들었다면 나는 그 열쇠를 자물쇠에 넣어 돌아가게끔 하는 관측 사실을 제공했다"고 했다.

리비트의 별은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 빛도 안 나는 그 많은 일을 해내며 언젠가 그것이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던 어머니의 별이다. 막상 당신은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세상이 얼마나 크고 멋진지를 알게 해준 어머니. 별 하나에 당신을 그려봅니다.

특집부 weekl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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